북한이 한국을 ‘적대적인 두 국가’ 가운데 하나로 규정한 가운데 북중관계는 정상외교 복원과 경제·군사 협력 확대를 통해 새로운 단계로 들어섰다. 남북관계가 단절된 상황에서 중국은 북한의 외교적 고립을 완화하는 핵심 후원국이자 한반도 정세를 관리하는 최대 변수로 다시 부상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26년 6월 8일부터 이틀간 북한을 국빈 방문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했다. 시 주석의 방북은 2019년 이후 7년 만이다. 김 위원장이 2025년 9월 중국 전승절 80주년 기념행사 참석을 위해 베이징을 방문한 데 이어 9개월 만에 두 정상이 다시 만났다.
김 위원장은 시 주석의 방북 기간 공항 영접부터 정상회담, 환영 연회와 환송까지 직접 챙기며 최고 수준의 예우를 보였다. 양측은 고위급 전략 소통을 강화하고 정치·경제·문화와 외교·법 집행·군대 등 여러 분야의 교류를 확대하기로 했다.
중국 측 정상회담 수행단에는 외교·국방 책임자뿐 아니라 국가발전개혁위원회와 상무부 수장도 포함됐다. 북중관계를 정치적 연대에 그치지 않고 경제·통상과 안보 협력으로 확대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됐다.
김 위원장은 북중관계 발전을 북한 국가의 최우선 전략 과제로 규정했다. 시 주석도 양국 최고지도자의 전략적 인도 아래 전통적인 북중 친선을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리겠다는 뜻을 밝혔다.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은 북중관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북한은 한국을 같은 민족이나 통일의 상대가 아니라 별도의 적대국으로 규정하면서 중국과의 관계는 사회주의 국가 간 전략적 관계로 강조하고 있다. 민족 중심의 한반도 질서에서 벗어나 북중러와 한미일이 맞서는 국가 간 대결 구도를 굳히려는 것이다.
중국은 1992년 한국과 수교한 이후 남북한과 모두 외교관계를 유지해왔다. 국제법적으로 한국과 북한을 각각 별도의 국가로 대하고 있지만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을 공식적으로 지지한 것은 아니다. 중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정치적 해결이라는 기존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2026년 북중 정상회담에서는 한반도 비핵화가 공개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다. 과거 중국이 북중 정상회담과 국제회의에서 비핵화를 주요 원칙으로 제시했던 것과 비교하면 변화가 감지되는 대목이다.
중국이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공식 인정한 것은 아니지만 공개적으로 비핵화를 압박하지 않으며 북중관계 복원을 우선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의 반발을 피하고 미국과의 전략경쟁 속에서 평양을 우호 세력으로 묶어두려는 계산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북중관계 복원에는 러시아 변수도 영향을 미쳤다.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와 군사·경제 협력을 대폭 확대했다. 러시아에 무기와 병력을 제공하고 에너지, 식량, 군사기술 분야에서 지원을 확보하면서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일부 낮췄다.
중국으로서는 북러 밀착이 지나치게 강화될 경우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이 줄어들 수 있다. 특히 러시아의 대북 군사기술 이전과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는 중국이 원하는 한반도의 안정적인 관리와 충돌할 수 있다. 시 주석의 방북에는 북한을 중국 중심의 전략적 틀 안에 다시 묶어두려는 목적도 담긴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 역시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외교적 선택지를 넓힐 수 있게 됐다. 러시아와의 군사협력을 지렛대로 중국의 경제적 지원과 정치적 후원을 끌어내고, 중국과의 관계 회복을 통해 러시아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피할 수 있다.
경제 분야에서 중국의 비중은 여전히 절대적이다. 북한의 공식 교역 대부분은 중국과의 거래에서 발생한다. 식량과 비료, 연료, 기계류와 생활필수품의 상당 부분도 중국을 통해 북한으로 들어간다.
북중 정상회담에서 국경 통상구의 전면적인 재가동과 인적 교류 확대 방침이 제시되면서 교역과 관광, 물류 협력이 늘어날 가능성이 커졌다. 신의주와 단둥을 연결하는 육상 교역로와 나선·훈춘 일대의 경제협력도 주요 사업으로 거론된다.
중국은 북한 경제를 전면적으로 지원하기보다 체제 불안과 대규모 난민 발생을 막을 수 있는 수준에서 관계를 관리해왔다. 북한의 급격한 붕괴나 군사적 충돌은 중국 동북지역의 안정을 위협하고 미군의 전략적 활동 범위를 중국 국경 가까이 확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은 중국에 복잡한 부담도 안긴다. 중국이 북한의 주장을 사실상 용인할 경우 한국과의 관계가 악화하고 한미일 안보협력이 강화될 수 있다. 반대로 북한에 비핵화와 남북대화를 강하게 요구하면 북러관계가 더욱 밀착하면서 중국의 영향력이 줄어들 수 있다.
중국이 북한의 대남 적대노선을 공개적으로 지지하지 않으면서도 정상회담에서 이를 직접 비판하지 않는 이유다. 북한의 체제 안정과 전략적 가치는 유지하되 한반도에서 실제 전쟁이 발생하는 상황은 막으려는 이중적인 접근이다.
한국 정부는 중국에 북한의 대화 복귀와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한 건설적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과 시 주석의 정상외교에서도 북핵 문제와 한반도 평화가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그러나 중국이 북한에 실질적인 압력을 행사할지는 불투명하다.
중국이 북한에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김정은 체제가 중국의 요구를 그대로 따르는 관계는 아니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을 체제 생존의 수단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중국의 비핵화 요구에도 독자적인 국방노선을 유지해왔다.
북중관계 강화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도 영향을 미친다. 중국이 국경 교역과 경제협력을 확대하면 제재로 북한을 협상장에 끌어내려는 미국과 한국의 전략은 약화할 수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추가 제재에 반대하면서 대북제재 체계의 실효성도 낮아졌다.
북한은 북중관계 복원을 통해 한국과의 관계를 단절하더라도 경제와 외교에서 감당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 이는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남북대화와 평화공존 정책에 북한이 호응해야 할 필요성을 낮추는 요인이다.
반면 중국은 북한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지나치게 높이거나 미국과의 충돌을 일으키는 상황을 원하지 않는다. 북중관계가 강화되더라도 중국이 북한의 모든 군사행동을 지지한다고 볼 수 없는 이유다. 중국의 핵심 목표는 북한의 완전한 고립도, 무제한적인 도발도 아닌 현상 유지와 위기 관리에 가깝다.
적대적 두 국가론 속 북중관계는 전통적인 혈맹을 넘어 미중 전략경쟁과 북러 군사협력이 결합한 복합적인 관계로 변하고 있다. 북한은 중국을 경제와 외교의 후원자로 활용하고 중국은 북한을 미국의 동북아 전략을 견제하는 완충지대로 본다.
시진핑 주석의 2026년 방북은 한동안 소원했던 북중관계가 정상 차원에서 복원됐음을 보여준 장면이다. 다만 양국의 이해관계가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북한은 핵보유국 지위와 독자성을 원하고 중국은 통제 가능한 북한과 안정된 한반도를 원한다.
향후 북중관계의 방향은 경제협력 확대 수준과 중국의 대북제재 이행, 북러 군사협력에 대한 중국의 대응에서 드러날 전망이다. 중국이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을 묵인한 채 전략적 협력만 강화한다면 한반도의 진영 대립은 더욱 굳어질 수 있다. 반대로 중국이 남북대화와 북미협상을 연결하는 중재 역할에 나선다면 경색된 한반도 정세의 돌파구가 마련될 가능성도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