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래 비자 발급 보류 이어 진성준 국방위원장 거부 논란…한미동맹 신뢰에 던져진 질문
미국의 경고인가, 강화된 입국심사인가…이재명 정부 외교의 예측 가능성과 국가 정체성 돌아봐야
미국은 한국을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한국의 정치인들과 정치권의 속성을 너무 잘 알고 있는 것일까.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에 이어 진성준 국회 국방위원장까지 미국 비자 문제에 직면하면서 한미관계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정 의원은 미국 비자 발급이 보류되면서 국정감사 방문 지역을 변경했고, 진 위원장은 오는 11월 1일부터 5일까지 예정된 미국 하와이 인도태평양사령부 방문을 앞두고 관용비자(A-2) 발급 거절 통보를 받았다.
진 위원장은 지난 28일 미국의 조치에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외교부는 관련 심사 절차가 아직 종결되지 않았으며 미국 측과 소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국무부는 30일 공개된 언론 질의 답변에서 개별 비자 신청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면서도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비자 관련 법률과 절차를 집행하고 있다는 원칙을 밝혔다.
따라서 이번 조치를 미국이 한국 정부에 보내는 정치적 경고라고 단정할 근거는 아직 없다. 다만 동맹국의 국회 국방위원장까지 비자 발급에 제동이 걸렸다는 사실은 한미관계의 신뢰 문제를 돌아보게 한다.
문제는 단순히 비자 한 장이 아니다. 미국이 한국을 어떤 동맹국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어떤 국가로 행동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한국 정치권에는 과거 학생운동을 통해 정치에 입문한 인사들이 적지 않다. 이들의 정치적 성장 과정에는 민족해방(NL) 계열 운동과 당시 대학가의 이념적 분위기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수십 년 전 학생운동 경력만으로 현재의 정치적 신념이나 대외적 충성 관계를 판단하는 것은 무리다. 과거 급진적 운동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오늘날까지 사회주의 이념을 유지한다거나 북한과 연계돼 있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
정치권에 진입한 이후 현실 정치와 권력의 논리에 적응한 인사들도 많다. 젊은 시절의 운동 경험을 정치적 자산으로 활용하면서도 실제 정책에서는 이념보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우선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 역시 한국 정치인들의 이러한 변화를 파악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 정치권의 역사와 인적 구성을 분석하는 것은 미국 외교·정보기관의 기본적인 업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지금 비자 문제가 발생한 것일까.
진 위원장은 2014년에도 국회 국방위원 자격으로 미국 태평양사령부를 방문한 이력이 있다. 과거 입국이 가능했던 정치인이 이번에는 비자 발급 거절 통보를 받았다는 점에서 심사 기준과 적용 절차에 관한 설명이 필요하다.
과거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이 심사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제기되지만, 미국은 구체적인 사유를 공개하지 않았다. 미국의 정책적 경고인지, 개별 신청자의 기록에 따른 행정적 판단인지는 구분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번 논란은 한국 외교가 안고 있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바로 국가의 예측 가능성과 신뢰다.
한국은 더 이상 국제사회에서 원조와 지원에 의존하던 가난한 나라가 아니다. 세계적인 제조업 경쟁력과 첨단기술 산업, 상당한 군사력을 보유한 국가다.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과 방위산업에서 한국의 결정은 다른 국가의 경제와 안보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경제력과 군사력이 커질수록 외교적 책임도 무거워진다.
과거에는 강대국 사이에서 최대한의 경제적 이익을 확보하는 전략이 생존을 위한 현실적 선택이었다. 그러나 국제적 영향력이 커진 국가에는 단기적 이익뿐 아니라 정책의 일관성과 약속을 이행하는 능력까지 요구된다.
중국에서는 경제협력을 강조하고, 미국에서는 안보동맹을 강조하며, 유럽에서는 방위산업 협력을 확대하는 외교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양한 국가와 협력하는 것은 주권국가의 당연한 권리다.
문제는 각각의 외교적 선택이 서로 충돌할 때 어떤 원칙에 따라 행동할 것인지 명확하지 않은 경우다.
실용주의와 기회주의의 차이도 여기에 있다.
실용주의는 분명한 국가적 원칙과 목표 아래 현실적인 수단을 선택하는 것이다. 반면 기회주의는 상황에 따라 원칙 자체를 바꾸면서 당장의 이익을 추구하는 태도다.
국가 외교가 신뢰를 얻으려면 협력 대상이 달라져도 핵심적인 원칙은 유지돼야 한다.
미국에 가서는 자유민주주의와 안보협력을 강조하고, 중국에서는 경제적 실리를 내세우며, 러시아와의 관계에서는 또 다른 기준을 적용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선택을 관통하는 국가전략이 없다면 상대국은 한국의 다음 행동을 예측하기 어려워진다.
외교에서 예측 가능성은 단순한 이미지의 문제가 아니다. 군사정보 공유, 첨단기술 협력, 방위산업 거래, 공동작전 계획처럼 국가안보의 핵심 분야에서는 상대방이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확신이 필수적이다.
한미동맹 역시 마찬가지다.
동맹은 정상회담장에서 악수하고 만찬장에서 샴페인을 나누는 것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평상시에는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위기가 발생하면 공동의 위험과 비용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과 영국의 협력은 이러한 동맹의 역사적 사례다.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을 상대로 나치 독일의 팽창이 영국뿐 아니라 미국의 장기적인 안보에도 위협이 된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설득했다.
물론 미국의 참전은 영국에 대한 신뢰만으로 결정된 것은 아니다.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격과 독일의 대미 선전포고가 직접적인 계기였다.
그럼에도 전쟁 과정에서 미국과 영국, 캐나다 등 연합국이 보여준 군사적 협력은 동맹이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공동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미군은 오마하와 유타 해변을, 영국군과 캐나다군은 골드·소드·주노 해변을 담당했다. 특히 오마하 해변에서는 미군이 막대한 희생을 치렀다.
동맹은 상대국이 위험에 처했을 때 실제로 어느 정도의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지에 따라 평가받는다.
오늘날 한미동맹에도 적용되는 원칙이다.
한국은 미국에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국가도 아니고, 미국의 모든 요구를 수용해야 하는 국가도 아니다. 미국 역시 한국의 주권과 민주적 의사결정을 존중해야 한다.
동맹국 국회의원의 공식 방문에 필요한 비자 심사가 지연되거나 거절됐다면 미국도 납득할 수 있는 절차적 설명을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한국 정부 역시 이번 사안을 단순한 외교적 결례 논란으로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한미 간 신뢰가 충분히 유지되고 있는지, 안보와 통상정책의 방향이 일관성을 갖추고 있는지, 정부의 대외적 메시지가 상대국에 어떻게 전달되는지 종합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이재명 정부의 실용외교가 성과를 거두려면 무엇을 위한 실용주의인지 분명하게 제시해야 한다.
미국과는 안보협력을 유지하고 중국과는 경제관계를 관리하며 일본과는 전략적 협력을 확대하는 외교가 가능하다. 그러나 이를 지속하려면 각국과의 관계를 관통하는 국가적 원칙이 있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국제법 존중, 국가안보와 경제적 번영이라는 목표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국가의 정체성은 특정 국가에 얼마나 우호적인가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국제사회에서 어떤 규칙을 지키고 어떤 약속을 이행하며 위기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의해 드러난다.
이 점에서 한국 외교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특정 국가에 대한 친밀감 경쟁이 아니라 일관된 국가전략을 제도화하는 일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외정책의 기본 방향이 급격하게 흔들린다면 상대국은 한국의 약속을 장기적인 국가적 합의가 아니라 특정 정부의 일시적인 선택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외교정책이 대통령 개인의 판단이나 정치권의 단기적 이해관계에 지나치게 좌우되지 않도록 제도적 기반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다.
외교·안보·경제 부처 간 정책 조율을 강화하고, 주요 동맹 및 전략적 협력국에 대한 장기적인 국가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국회 역시 정파적 이해관계를 넘어 국가안보와 외교의 기본 원칙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이번 미국 비자 논란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서로 다른 해석이 나오고 있다. 여권에서는 동맹국의 공식 의정활동을 제약한 외교적 결례라는 비판이 제기됐고, 야권에서는 한미관계의 이상 신호라는 주장이 나왔다.
그러나 어느 쪽 해석이든 미국의 실제 비자 심사 사유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치적 결론부터 내리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비자 발급 여부를 넘어 한미 양국이 상호 신뢰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한국은 이제 국제사회에서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스스로 설명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경제 선진국이라면 어떤 경제질서를 지향하는지, 군사강국이라면 어떤 안보질서에 기여할 것인지,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면 어떤 국제적 책임을 감당할 것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국격은 정상 간 친분이나 골프 회동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외교적 수사보다 정책의 일관성이, 일시적인 성과보다 축적된 신뢰가 중요하다.
미국의 이번 비자 조치가 실제로 한국 정부를 향한 정치적 메시지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한국이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분명하다.
우리는 국제사회에서 어떤 국가가 되려 하는가. 그리고 우리의 동맹과 협력국들은 한국의 선택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
이재명 정부가 강조하는 실용외교가 진정한 국가전략으로 자리 잡으려면 그 질문에 답해야 한다.
기회의 시대를 기회주의의 시대로 만들지 않으려면 국가의 철학을 정립하고, 그 철학을 지속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시스템부터 갖춰야 한다.
미국 비자 거부 논란이 한국 외교에 남긴 가장 중요한 단상도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