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딸 김주애가 군사·외교·국가 의례 전면에 잇달아 등장하면서 외신의 관심도 ‘후계 가능성’에서 ‘후계 구축 방식’으로 옮겨가고 있다. 다만 북한이 김주애의 공식 직책이나 후계 지위를 발표하지 않은 만큼 후계 확정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시각도 여전히 강하다.
로이터통신은 한국 국가정보원의 평가를 인용해 김주애가 김정은의 후계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정원은 올해 국회 보고에서 공개 활동의 빈도와 의전, 군사 분야 노출 등을 토대로 김주애의 후계 가능성을 이전보다 명확하게 평가했다.
외신이 특히 주목하는 부분은 김주애가 참석하는 행사의 성격이다. 김주애는 2022년 11월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 현장에서 처음 공개된 이후 열병식과 무기시험, 군수공장, 군사훈련 등 북한 권력의 핵심 기반인 군 관련 행사에 반복해서 등장했다.
올해 들어서는 활동 범위가 더욱 넓어졌다. 김주애는 금수산태양궁전 참배에 참여한 데 이어 전승절로 부르는 정전협정 체결일 기념행사와 혁명열사릉 참배에도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광복절을 맞아 평양 해방탑을 참배하는 자리에도 김정은과 동행했다. 군사력뿐 아니라 혁명 역사와 국가 정통성을 계승하는 인물로 이미지를 확장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AP통신은 금수산태양궁전 참배를 김일성·김정일로 이어지는 통치 정통성과 연결된 장면으로 평가했다. 김주애가 부모와 함께 선대 지도자들에게 참배한 것은 단순한 가족행사라기보다 김씨 일가의 권력 계승을 시각적으로 보여준 장면이라는 것이다.
독일 공영매체 도이체벨레도 김주애가 주요 공식행사에서 김정은과 나란히 배치되고 군 지휘관들의 예우를 받는 장면에 주목했다. 특히 남성 중심의 북한 권력구조에서 여성 후계자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군사행사 노출을 반복하고 있다는 해석을 소개했다.
미국 매체 복스는 김주애의 공개 방식이 김정은의 후계 과정과 뚜렷하게 다르다고 분석했다. 김정은은 후계자로 내정되기 전까지 오랫동안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김주애는 어린 나이부터 주민과 군부에 얼굴을 각인시키고 있다. 김정은이 자신의 급작스러운 권력 승계 경험을 토대로 장기간에 걸친 후계자 육성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영국 가디언은 김주애의 부상이 북한 체제의 세습적 성격을 다시 확인해준다고 평가했다. 김주애가 실제 지도자가 되느냐와 별개로 그의 등장은 북한이 사회주의 국가를 표방하면서도 최고권력을 한 가문이 독점하는 구조라는 점을 보여준다는 비판이다.
외신들은 김주애의 의전상 위치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김주애는 행사장에서 김정은 바로 옆이나 중앙에 배치되고 고위 간부들보다 앞서 걷는 모습이 자주 공개됐다. 북한 매체가 한때 사용한 ‘존귀하신 자제분’이라는 표현도 일반적인 지도자 자녀에게 붙이는 호칭과는 차이가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주애가 탱크를 직접 운전하거나 권총과 소총을 다루는 장면이 공개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어린 여성이라는 약점을 상쇄하고 군 통수권을 계승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이미지를 만들려는 연출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중론도 남아 있다. 북한은 김주애의 이름과 나이조차 공식 확인하지 않았으며 당이나 국가기관에서 맡은 직책도 공개하지 않았다. 후계자를 뜻하는 공식 표현 역시 사용하지 않았다. 김정은에게 공개되지 않은 아들이 있을 가능성과 북한 군부 및 간부층이 여성 지도자를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문제도 변수다.
김주애의 등장이 반드시 후계 확정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김정은이 정상적인 가족과 미래세대의 이미지를 앞세워 통치자의 인간적 면모를 부각하거나 핵무력을 다음 세대의 안전을 보장하는 수단으로 선전하기 위해 딸을 활용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
현재 외신의 대체적인 평가는 김주애가 유력한 후계 후보로 관리되고 있다는 데 모인다. 다만 후계자 교육 단계인지, 사실상 후계자로 내정된 것인지, 향후 다른 인물로 교체될 가능성이 있는지를 판단하기에는 북한 내부 정보가 부족하다.
결국 앞으로 주목할 지점은 김주애의 공식 직책 부여 여부다. 노동당 정치국이나 당 중앙위원회 진입, 군 관련 직위 부여, 김정은 단독행사 대리 참석 등이 확인될 경우 후계구도는 한층 분명해질 수 있다. 지금까지의 모습은 4대 세습을 준비하는 강한 신호지만, 북한이 아직 마지막 도장을 찍지는 않은 단계라고 보는 것이 외신의 공통된 판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