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8월 29일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제9기 제2차 회의를 열고 군 수뇌부를 대폭 교체했다. 박정천 국방성 고문은 당 정치국 위원과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복귀했고, 노광철 국방상은 해임돼 당 군수공업부 제1부부장으로 이동했다. 김성기 총정치국장은 국방상에 임명됐으며 총정치국과 보위국 지휘부도 함께 바뀌었다.
인사 범위가 중앙군사위원회와 국방성, 총정치국, 보위국, 군수공업부에 걸쳐 있다는 점은 단순한 자리 이동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이를 곧바로 ‘전문성에 따른 적재적소 배치’나 ‘현대전에 대응하기 위한 합리적 조직개편’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성급하다.
북한이 인사 배경과 정책 실패의 내용, 책임 소재를 공개하지 않은 상황에서 긍정적인 목적만 추론한다면 북한 당국의 발표를 사실상 대신 설명하는 결과가 된다.
박정천 복귀, 전문성보다 불안정한 인사체계 보여줘
박정천은 지난 2월 제9차 당대회에서 당 중앙위원과 정치국 위원,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가 불과 6개월 만에 같은 핵심 직책으로 돌아온 것은 북한 군사사업에서 그의 경험이 필요해졌다는 의미일 수 있다.
그러나 반대 해석도 가능하다. 제9차 당대회에서 단행한 군사지도체계 개편이 예상한 성과를 내지 못했거나 새 지도부가 김정은의 신임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박정천을 불러들였을 가능성이다.
박정천이 고문으로 물러난 뒤에도 무기시험과 군수공업 현지지도에 계속 등장했다는 사실 역시 ‘계획된 후선 배치’를 입증하지 않는다. 공식 직책을 박탈한 뒤 필요할 때마다 동행시키는 북한 특유의 유동적 인사운영으로 볼 수도 있다.
정상적인 조직이라면 책임과 권한, 평가 기준이 제도적으로 공개된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최고지도자의 판단에 따라 고위 지휘관이 강등과 복귀를 반복한다. 박정천의 재등용은 조직의 유연성을 보여주기보다 최고지도자 한 사람에게 인사권과 군사적 결정권이 집중된 현실을 드러낸다.
노광철 이동은 영전 아닌 사실상의 문책
노광철이 국방상에서 물러나 군수공업부 제1부부장으로 이동한 것을 ‘전문분야 재배치’로만 보는 시각도 설득력이 부족하다.
북한 매체는 노광철을 국방상에서 해임했을 뿐 아니라 당중앙지도기관에서 소환했다고 밝혔다. 이는 단순한 업무 조정이 아니라 정치적 지위의 하락을 동반한 인사다. 과거 제2경제위원장 경력이 있다고 해서 이번 이동의 문책 성격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북한은 최근 인민군위원회와 국방성의 정치·군사 활동을 평가한 뒤 조직개편을 단행했다고 밝혔다. 평가 결과가 양호했다면 국방상을 해임하고 군 지휘부를 동시에 교체할 이유가 크지 않다. 공개되지 않은 사업 차질이나 지휘 책임이 인사에 반영됐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런데도 구체적인 평가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어떤 사업이 지연됐고 누가 어떤 잘못을 했으며 새 지휘부가 무엇을 개선해야 하는지는 알 수 없다. 결과만 발표하고 책임의 근거를 밝히지 않는 인사는 책임행정이 아니라 불투명한 통치다.
총정치국·보위국 개편은 ‘효율화’만으로 설명 못 해
김성기를 총정치국장에서 국방상으로 옮기고 보위국장과 총정치국 제1부국장까지 교체한 것은 군사적 효율뿐 아니라 군 내부 통제 강화의 성격도 갖는다.
총정치국은 군에 대한 당의 정치적 통제를 담당하고 보위국은 군 내부의 사상 동향과 반체제 행위를 감시하는 조직이다. 두 기관의 지휘부를 동시에 바꾼 것은 무기개발과 군수생산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김성기는 작전이나 군수보다 정치조직 사업을 맡아온 인물이다. 그를 국방상에 앉힌 것은 국방성에 대한 당의 통제와 정치적 감독을 강화하려는 조치일 수 있다. 보위국장 출신 유광우를 총정치국 제1부국장으로 옮긴 것도 감시와 정치통제의 연계를 강화하는 인사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따라서 이번 개편을 단순히 ‘각자의 경력에 따른 역할 재분담’이라고 규정해서는 안 된다. 북한 군대에서 전문성 못지않게 중요한 기준은 최고지도자에 대한 충성, 당의 명령 이행, 군 내부 동향 통제다. 이 요소를 빼면 총정치국과 보위국을 함께 움직인 이유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러시아 전쟁 경험을 ‘현대전 학습’으로 미화해서는 안 돼
북한군의 러시아 쿠르스크 전투 참여를 무기체계와 전술을 검증한 경험으로만 평가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러시아와 북한은 북한군의 쿠르스크 전투 참여를 공식 확인했다. 북한은 병력뿐 아니라 포탄과 탄도미사일 등 대규모 무기를 러시아에 제공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는 북한군이 현대전을 경험했다는 기술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북한이 다른 국가의 전쟁에 병력과 무기를 투입하면서 국제분쟁의 직접 당사자로 변했다는 뜻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는 북한과의 무기 거래와 군사기술 이전을 금지하고 있다.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과 무기 공급은 국제사회가 유지해온 비확산 질서를 훼손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전장에서 무인기와 전자전, 포병 운용 경험을 얻었다고 해도 그 대가는 북한 군인들의 희생과 우크라이나 민간인의 피해다. 북한제 미사일이 우크라이나 민간인 사망을 초래했다는 주장과 조사 결과도 이어지고 있다. 이를 ‘무엇이 유용하고 무엇이 부족했는지 확인한 과정’으로만 묘사하면 침략전쟁과 인명 피해를 군사기술 실습으로 축소하게 된다.
무기 성과는 북한 발표만 있을 뿐 검증되지 않아
북한은 갱신형 방사포와 탄도미사일, 신형 전차, 구축함, 순항미사일, 전자전 장비 등을 잇달아 공개하고 있다. 그러나 공개와 실전 배치는 다른 문제다.
북한이 발표하는 시험 결과는 외부의 독립적인 검증을 거치지 않는다. 명중률과 신뢰도, 실제 생산량, 부대 배치 규모, 장기간 운용 능력도 공개되지 않는다. 8월 29일 표창받은 국방과학자들이 개발했다는 ‘특허군사과학기술’ 역시 구체적인 내용이 알려지지 않았다.
내용을 공개하지 않은 성과를 근거로 북한의 핵심 군사기술 연구가 성공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 일정한 연구 결과가 있었다는 사실과 그것이 전투력을 획기적으로 높였다는 주장은 구분해야 한다.
새 구축함과 미사일을 공개했다고 해서 해군 전체가 현대화되는 것도 아니다. 함정의 장기 운용에는 정비시설과 연료, 탄약, 숙련된 승조원, 지휘통신 체계가 필요하다. 일부 시제품과 선전용 공개행사를 군 전체의 질적 전환으로 확대해석해서는 안 된다.
‘지방발전’에 동원된 군대, 경제 효율성은 의문
북한은 지방발전 20×10 정책과 농촌주택, 병원, 공장 건설에 군 병력을 투입하고 있다. 북한 당국은 이를 군의 조직력과 집행력을 활용한 국가건설로 선전한다.
그러나 군 병력의 건설 동원은 경제발전의 증거가 아니라 민간 건설산업과 지방행정의 취약성을 보여준다. 정상적인 경제체제라면 전문기업과 숙련 노동자, 시장가격과 계약, 지방재정을 통해 공사를 진행한다. 군인을 대규모로 동원하는 방식은 인건비와 실제 사업비를 숨긴 채 속도만 끌어올릴 수 있다.
공장을 지었다고 생산이 지속되는 것도 아니다. 원료와 전력, 운송수단, 판매망을 확보하지 못하면 새 건물은 가동률이 낮은 전시성 시설로 남을 수 있다. 북한의 지방발전 정책은 중앙이 시설을 건설한 뒤 원료 조달과 운영 책임을 지방에 넘기는 구조여서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돼 왔다.
군 건설병력의 노동조건과 보상도 공개되지 않는다. 북한 당국이 ‘충성’과 ‘사상훈련’을 강조하는 가운데 병사들의 장시간 노동을 국가건설의 미담으로만 다루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군대의 경제건설 참여가 커질수록 본래 임무인 국방과 훈련이 약화될 가능성도 있다.
주민 생활 희생시키는 무력현대화
북한의 무력증강을 평가할 때 가장 먼저 따져야 할 것은 기회비용이다.
북한은 핵무력 확대와 탄도미사일, 해군기지, 군수공장, 군사시설 건설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막대한 자금과 원료, 에너지, 숙련 인력이 군사부문으로 집중될 수밖에 없다. 반면 북한 주민들은 만성적인 식량 불안과 의료·생활 인프라 부족을 겪는 것으로 국제기구와 인권단체들은 평가하고 있다.
지방공장과 병원을 짓는다고 해도 국가자원의 우선순위가 핵무기와 미사일에 놓여 있다는 구조는 달라지지 않는다. 군을 경제건설에 투입하는 것은 군사와 민생을 동시에 발전시키는 해법이라기보다, 군사부문에 집중된 자원을 이용하지 않고서는 민간 건설을 추진하기 어려운 북한 경제의 한계를 보여준다.
‘안보강화와 경제건설의 동시 수행’이라는 표현은 듣기에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핵·미사일 개발로 초래된 제재와 고립, 군사비 부담을 주민과 군인들의 동원으로 보충하는 구조일 수 있다.
미국과 비교한다고 북한의 문제가 사라지지 않아
미군이 중동 장기배치와 탄약·함정 운용 부담을 겪는다는 지적은 검토할 가치가 있다. 세계 최대 군사력을 가진 미국도 전력의 동시 운용과 보충에 한계를 가진다는 사실은 현대전에서 생산과 정비가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를 북한 군사정책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비교자료로 사용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다.
미국 군 내부에서 지휘관들이 국방부 방침에 공식적으로 이견을 제기하고 언론이 이를 보도할 수 있다는 사실은 오히려 북한과의 차이를 드러낸다. 북한에서는 군 지휘관이 최고지도자의 결정에 반대했는지, 인사에 어떤 평가가 적용됐는지, 무기개발에 얼마나 많은 예산이 들어갔는지 공개되지 않는다.
미국의 전략적 과잉과 군수생산 문제를 비판하는 것과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및 해외 파병을 정당화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미국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북한 군사정책의 위험성과 주민 희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번 인사의 핵심은 ‘변화’ 아닌 김정은식 통제
북한 군 지휘부 개편은 무력현대화와 군수생산, 건설사업을 빠르게 추진하려는 목적을 포함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박정천의 복귀와 노광철의 해임, 총정치국·보위국 개편을 모두 설명할 수 없다.
이번 인사에서 분명하게 확인되는 것은 군사정책의 합리적 분업이 아니라 김정은이 군 지휘관을 언제든 해임하고 다시 불러들일 수 있는 권력구조다. 인사 기준도, 업무평가도, 실패 원인도 공개되지 않았다.
새 무기가 나오면 전술과 조직이 달라져야 한다는 주장은 일반론으로는 맞다. 그러나 북한에서 조직개편은 제도적 토론이나 객관적인 성과평가가 아니라 최고지도자의 판단과 지시에 의해 이뤄진다. 총정치국과 보위국까지 함께 손본 것은 군의 전문화 못지않게 충성과 내부통제를 중시한다는 신호다.
북한군이 계속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하기 어렵다. 문제는 그 변화가 주민의 안전과 생활을 위한 것인지, 김정은 체제의 생존과 전쟁수행 능력 확대를 위한 것인지다.
군사기술의 성과만 보고 인권과 국제법, 경제적 비용, 불투명한 인사체계를 외면한다면 분석은 선전과 구별되기 어렵다. 이번 군부 개편을 ‘필요한 일을 적임자에게 맡긴 인사’로 미화하기보다 반복되는 해임과 복귀, 감시기구 강화, 군수생산 확대가 보여주는 김정은식 군 통제의 실체를 먼저 살펴야 한다.
